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문단 편집) === 역사 ===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획득한 [[박정희]]는 '''[[민주공화당]]'''이라는 새로운 보수 정당을 세우고 민주당계 정당과 보수 양당제의 형성을 이어나갔다. 민주공화당은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여당을 지냈으며, 초반기에는 나름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한 때 [[6.3 항쟁]]과 [[한일협정 반대투쟁]]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한일협정이 성공적으로 체결되고 월남파병도 잘 이뤄지면서 박정희는 재선에 성공하고 7대 총선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그러다 7대 총선이 6.8부정선거로 번지면서 다시 위기 국면으로 몰리지만, 이후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고 강력한 반공주의 정책으로 계속 안정적인 권력을 유지했다. 이후 [[3선 개헌]]을 주도하면서 임기 연장을 이뤄내고 안정적인 권력을 유지했지만,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과 사법 파동, KAL빌딩 방화 사건, 의료파동, 교련반대운동, [[10.2 항명 사태]] 등으로 다시 위기국면으로 진입했고 박정희는 간신히 3선에 성공하고 8대 총선에서도 민주공화당은 과반수 이상을 확보했지만 신민당에 15석 이상 의석을 빼앗겼다. 이에 박정희는 [[10월 유신]]이라는 친위쿠데타를 일으켰고 [[유신정우회]]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립해서 장기집권의 태세를 갖추게 된다. 이후 포항제철 설립, 중공업 산업 정책, 지하철 건설, 중동 진출 등으로 안정적인 권력을 누리지만 2차 석유 파동 이후 다시 위기 국면으로 진입했고 YH 사건과 부마민주항쟁으로 위기국면이 심화되더니 측근들의 분열로 [[10.26 사태]]가 터지면서 [[박정희]]는 서거했고 이후 민주공화당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 [[5.17 내란]]을 일으키자 정국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이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민주공화당을 비롯한 기성 정당들을 모조리 강제 해산시키고 '''[[민주정의당]]'''이라는 새로운 보수 정당을 창당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각종 유화책과 3저 호황, 서울올림픽 유치, 서울아시안게임 개최, 물가안정 등을 이뤄내며 정권을 이어나갔으나 [[6.29 선언]]으로 여당 민주정의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그해 대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분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여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고, 민주정의당은 제6공화국의 첫번째 정권을 창출하며 여당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민주화가 이뤄지고 제6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치뤄진 13대 총선에서 여당 민주정의당은 125석이라는 적은 수의 의석을 얻었으나, 이후 서울올림픽, 1기신도시, 범죄와의 전쟁 등의 호재를 이용해서 열세였던 지지율을 반전시켰고 적은 국회 의석수 또한 제2야당 [[통일민주당]][* 당시 둘로 나뉘어 있던 민주당계 정당 중 하나였다. 나머지 하나는 제1야당 [[평화민주당]]이었다.],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 민주공화당을 계승하는 정당이었다. 그 당시 일반인들은 이 정당이 더욱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을 정통으로 계승한다고 보았다. 다만 민주공화당 출신 인사들 중에 민주정의당으로 넘어간 경우도 많아서 둘 다 어느 정도 민주공화당을 계승한다고 봐야 할 듯 하다.]과 [[3당 합당|합당]]하여 218석의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탄생시키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사실 노태우는 5공 시절부터 민주당계 정당 측에 곧 있으면 좌파가 제도권 정치에 진입할 것이므로 보수 정당들이 대통합해야 한다고 제의했으나,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이 모두 거부해 무산된 바 있었다. 그랬던 것이 몇 년 후에 다시 추진되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기에 팽배했던 인식이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등 군부 정당은 독재 세력, 신민당,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등[* 1967년 창당된 신민당은 1960년대 민주공화당에 맞섰으나 서로 분열되어서 지리멸렬했던 야당들을 1970년대에 야당통합의 기치로 통합한 야당이다. 오늘날 자유당의 라이벌로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이 인식되듯이 공화당의 라이벌로는 신민당이 인식된다. 민주한국당의 경우 관제야당으로 기능해서 제대로 된 야당으로 쳐주지 않는 편이다.] 민주당계 정당은 민주화 세력으로 서로 적이라는 인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산업화의 역할을 자임하는 군부 독재 세력들과 민주화 세력이었던 통일민주당이 합당했던 3당 합당은 야합이라고까지 불릴만큼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큰 분기점이 된 사건 중 하나로 1987년 민주화로 6공화국 탄생의 의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1997년 보수정당에서 민주당계 정당으로 최초로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날 때 새정치국민회의는 3당 합당과 비슷하게 군부 정치 세력이었던 자민련의 김종필, 박태준과 함께 DJP 연합을 하였고 이후 한국사회는 [[군부 독재|군부정치세력]]와 [[자유민주주의|민간정치세력]]이 민주주의 실현을 놓고 벌이던 독재와 민주의 대결프레임에서 지금과 같은 [[보수주의|보수]]와 [[진보주의|진보]]의 프레임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실제로 언론들 역시 90년대 이후로 한국의 정치 체제를 보수 양당제라고 부르는 사례가 거의 사라져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